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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사관학교 생도 모집 경쟁률을 보고 갑자기 든 생각

2020학년도 사관학교 생도 모집 경쟁률이 육사와 공사는 각각 44.4:1과 48.7:1로 역대 최고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고, 해사는 지난해보다 감소한 25.1:1을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고 갑자기 든 생각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최소 25:1에서 최대 48:1의 경쟁률을 뚫고 대한민국의 장교가 되기 위해 많은 지원자가 몰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입시생들이 상위권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실전 모의훈련을 치르기 위해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수능시험 이전에 수능시험과 비슷한 형태로 공개적인 장소에 모여 시험을 치르는 것은 사관학교와 경찰대 1차 시험뿐이라 오로지 테스트를 목적으로 수능보다 조금 어려운 편인 사관학교 1차 필기시험을 보려고 지원하는 입시생이 20%~25% 정도 된다고 합니다. 

 

육사, 공사, 해사 1차 시험(국어, 영어, 수학)은 매년 동시에 치러지는데 모든 사관학교는 공동 출제된 문제로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1차 시험에 합격해도 2차 시험(체력, 면접 등)엔 응시하는 비율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해사의 경우 1차 시험 합격자의 2차 시험 응시율이 2016학년도 65.6%, 2017학년도 62.3%, 2018학년도 54.8%, 2019학년도 45.1%로 매년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허수 지원자 때문에 1~2점 차이로 떨어진 진성 지원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사관생도의 꿈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장교는 명예와 자부심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

제가 블로그 닉네임을 '낙하산부대'로 정한 이유는 2000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2002년부터 4년간 공수부대로 불리는 '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사관학교를 졸업하지는 않았고, 학군단 즉 ROTC 출신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꿈꾸다가 뜻하는 바가 있어 2006년 대위로 전역 후 현재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벌써 임관 20주년이니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제가 ROTC 후보생 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고, 세대가 바뀌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것은 장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명예와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한 굳건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를 희생해서 국민과 나라를 지킬 수 있고, 병사들 앞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장교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을 지켰느냐고 물으신다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 생활하는 동안 계급장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절실하게 느꼈고,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누구보다 솔선수범 하며 병사들을 이끌었고, 무조건적인 상명하복이 아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장교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장교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멋있어 보여서, 병사로 군대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군생활하는 동안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어려우니까 좀 더 경쟁률이 낮은 직업군인 되려고 등등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제가 6년이라는 군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바로는 장교로서의 소명의식이 없으면 군생활하는 하루하루가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힘든 공수교육을 받아야 하지? 낙하산 타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특전사에 계속 근무해야 하나? 요즘 병사들은 18개월밖에 군생활 안 하는데 내 군생활이 너무 긴 것 아닌가? 병사들이 나보다 학력도 높고 아는 것도 많은데 어떻게 지휘를 하지? 등등 장교가 되는 과정도 어렵지만 되고 나서 장교다운 장교가 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제가 갑자기 사관학교 입시 경쟁률에 대한 기사를 보고 이렇게 무거운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것은 장교가 되기 위해 도전하시는 분들은 그러한 소명의식을 가진 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관학교에 지원하는 것이 단순히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시험 사전 테스트를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의식을 가지고, 내 꿈을 펼치기 위한 진정한 도전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제가 소위로 임관해서 제 장교 수첩 첫 장에 적어 놓았던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장교로서 명예와 자부심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선배들이 걸었고, 내가 걸어야 할 하나의 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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